'못 줄 이유'/장영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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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자 사람들이 가방이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서로 나눌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. 봉헌금만 가지고 달랑 맨몸으로 갔던 나는 당황했다.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차 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.
차 키를 준다? 하, 말도 안 되지. 그럼 뭐가 있을까. 궁여지책으로 내 몸뚱이에 걸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. 목에 맨 스카프? 백 퍼센트 실크이니 아마 2, 3만원은 할걸. 귀고리로 말하자면 금(金) 아닌가. 금 한 돈쯤 된다 쳐도 5만원은 할 것이다. 목걸이는 아마 그 보다 더 비싸겠지? 대충 6, 7만원?
평상시 숫자라면 백치에 가깝도록 무능한 나의 두뇌가 '못 줄 이유' 를 찾기 위해서는 놀랍게도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내가 지닌 물건들의 가격을 계산하고 있었다. 내 새끼손가락에 끼워진 실 반지, 이것은 가격으로야 얼마 나가지 않겠지만 학생들이 해 준 선물이다. 못 주지, 암, 못 주고말고. 그럼 재킷? 낡긴 했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고 이맘 때 쯤이면 교복처럼 입는 옷이니 그것도 줄 수 없다. 그럼, 거기에 꽂힌 브로치? 하지만 세트로 된 것이라 하나를 줘 버리면 나머지는 짝짝이가 될 터라 그것도 못 주겠고.........
옆에 앉으신 할머니는 이미 무엇인가를 내게 내밀고 있었다. 어쩌나, 어쩔거나. 그런데 무심히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니, 아, 다행히, 너무나도 다행히, 며칠 전 음식점에서 입가심으로 준 박하사탕 하나가 잡혔다. 원래 박하사탕을 싫어하기 때문에 먹지 않고, 그나마 버리는 수고가 아까워 그냥 넣어 두었던 물건이었다.
'주님, 감사합니다.'
아이로니컬하게도 나는 내게 필요 없는 물건, 아니 오히려 주어 버려서 속 시원한 물건을 발견하게 해 주신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사탕을 할머니께 내밀었다. 할머니도 무엇인가를 내 손에 쥐어 주셨는데, 그것은 아주 조그맣고 예쁜 병에 든 '구심(救心)' 이라는 심장약이었다.
신부님은 "작은 물건이라도 옆 사람과 나누는 기쁨이 어떠냐"고 물었다. 과연 사람들의 얼굴들이 환한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. 그러나 나는 미소를 담을 수 없었다. 나는 항상 내가 신심은 좀 부족해도 그런대로 하느님의 뜻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선하고 올 곧게 살아간다고 믿었다. 아니, 어떤 때는 오히려 선하기 때문에 손해보며 산다고 억울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. 그런데 그건 순전히 구차한 자기 합리화였다.
옆에 앉은 할머니의 형색이 옹색해 보여서, 날씨가 추운데 할머니 재킷이 내 것보다 얇아 보여서, '구심' 을 내어 놓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등 '줄 이유' 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는데도,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'못 줄 이유' 를 찾은 것은 아마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다져 온 나의 마음가짐 탓일 것이다.
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를 '용서해야 할 이유'보다는 '용서하지 못할 이유' 를 먼저 찾고, 누군가를 비난하면서 그를 '좋아해야 할 이유'보다는 '좋아하지 못 할 이유' 를 먼저 찾고,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건 채 누군가를 '사랑해야 할 이유' 보다는 '사랑하지 못할 이유' 를 먼저 찾지는 않았는지.
나는 '구심' 병을 손에 꼭 쥐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.
"주님, 제 육체 속의 심장은 멀쩡히 뛰고 있지만제 마음이 병들었나이다. 제 마음을 고쳐 주소서. 저에게 '구심(救心)' 의 은총을 베푸시어 희고 깨끗한 마음을 주소서."
장영희 ‘못 줄 이유’
댓글목록
단장 이은정님의 댓글
단장 이은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
못 줄 이유, 용서하지 못할 이유, 좋아하지 못할 이유 등등 우리는 못할 이유를
너무 많이 찾고 있었네요.
좋은글 감사합니다
팀장 노정희님의 댓글
팀장 노정희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
너무나 공감합니다.
못 줄 이유, 못할 이율를 늘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.
잘 읽었습니다.
팀장 이복희님의 댓글
팀장 이복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
쌤님들 우리는 사랑하는 이유를 줄이유늘 생각하면서
살면 좋겠습니다.